CLOLAT

Fuency of imagination

CLOLAT Artist Types

Artist Type

실시한 하워드 가워드의 적성영역 테스트 통해 12가지 아이의 유형을 알 수 있습니다.

  • α

    앤디 워홀
    (Andy Warhol : 얼리어답터형)
    ESTP :수완좋은 활동가형. 친구,운동,음식 등 다양한 활동을 선호하는 형

  • β

    마그리트
    (Rene Magritte : 발명가형)
    ENTP : 발명가형 풍부한 상상력을 가지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형

  • γ

    클레
    (Paul Klee : 감각형)
    INTP : 아이디어뱅크형 비평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는 뛰어난 전략가들

  • δ

    세잔
    (PAUL CEZANNE : 연구자형)
    ISTP : 백과사전형 논리적, 뛰어난 상황 적응력을 가진 형

  • ε

    레오나르도 다빈치
    (Leonardo da Vinci : 멀티플
    레이형)
    INFP : 과학자형 전체적으로
    조합하여 비전을 제시하는 형

  • ζ

    칼더
    (Alexander Stirling Calder; 하이브리드형)
    ESFP : 사교적인 유형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우호적인 형

  • η

    에셔
    (Maurits Cornelis Escher ; 협업형)
    ISTJ : 세상의 소금형 한번 시작한 일은 끝까지 해내는 형

  • θ

    쇠라
    (Georges Pierre Seurat : 체험형)
    ENFP : 스파크형 열정적으로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형

  • λ

    훈데르트 바서
    (Friedensreich Hundertwasser : 성인군자형)
    ISFP : 성인군자형 따뜻한 감성을 가지고 있는 겸손한 유형

  • μ

    발터 그로피우스
    (Walter Gropius : 지도자형)
    ENTJ : 지도자형 비전을 가지고 사람들을 합리적으로 이끌어 가는 형

  • ξ

    장 뒤뷔페
    (Jean Dubuffet : 이상주의자형)
    INFP : 잔다르크형 이상적인 세상을 만들어가는 형

  • π

    루소
    (HENRI ROUSSEA : 예언자형)
    INFJ : 예언자형 사람과 관련된 것에 통찰력이 뛰어난 형

    • Extraversion 외향형(에너지방향/주의초점) : 폭넓은 대인관계 유지 사교적 정열적 활동적
    • Sensing 감각형(인식가능/정보수집) : 오감에 의존 실제 경험 중시 현재에 초점을 맞추고 정확,철저히 일처리
    • Thinking 사고형(판단기능/판단,결정) : 진실과 사실에 주관심 논리적 분석적 객관적 판단
    • Perceiving 인식형(이행양식/생활양식) : 목적과 방향은 변화가능 상황에 따라 일정 변경 자율적이고 융통성 있음

    α 얼리 어답터형 예술가- 기술과 예술의 크로싱

    테크놀로지와 미술의 융합
    스마트 아트

    미국 팝아트의 선구자. '팝의 교황', '팝의 디바'로 불린다. 대중미술과 순수미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미술뿐만 아니라 영화, 광고, 디자인 등 시각예술 전반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주도하였다. 살아있는 동안 이미 전설이었으며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통한다. 살아있는 동안 이미 전설이었던 그는 동시대 문화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과 이를 시각화해내는 직관을 가지고 있었다. 워홀은 자신의 예술을 '세상의 거울'이라고 말한다. 스스로 기계이기를 원했던 워홀은 기계와 같은 미술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기계를 통해 무한히 복제되는 세계 속에서 그의 이미지도 그의 명성과 함께 증식을 거듭하고 있다.주요 작품은 《캠벨 수프 Campbell's soup》(1962), 《두 개의 마릴린 The two Marilyns》(1962),《재키 Jackie》(1964), 《마오 Mao》(1973), 《자화상 Self-Portrait》(1986) 등의 실크스크린과 영화 《잠 Sleep》(1963), 《엠파이어 Empire》(1964),《첼시의 소녀들 The Chelsea Girls》(1966)등이 있다.

    • Extraversion 외향형(에너지방향/주의초점) : 폭넓은 대인관계 유지 사교적 정열적 활동적
    • Intuition 직관형(인식가능/정보수집) : 육감내지 영감에 의존,미래 지향적,가능성과 의미추구,신속,비약적으로 일처리
    • Thinking 사고형(판단기능/판단,결정) : 진실과 사실에 주관심 논리적 분석적 객관적 판단
    • Perceiving 인식형(이행양식/생활양식) : 목적과 방향은 변화가능 상황에 따라 일정 변경 자율적이고 융통성 있음

    α 발명가형 예술가- 영감과 탐구의 크로싱

    세상을 바꾼 아이디어
    미술계의 LED 전구
    심리 자연사 박물관
    다중 이미지를 창조하다
    미술과 정신분석학의 융합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역설逆說로 역설力說하다
    진실이 된 패러독스
    매운 사과, 새콤한 마늘
    창조 산업 최초의 CEO
    산업화된 창작 방식과 맞춤형 예술품
    미를 소비하다| 절묘한 예술 마케팅

    벨기에의 화가. 1927년 쉬르레알리슴 운동에 참가했고, 처음에는 키리코풍의 괴상한 물체나 인간끼리의 만남 등과 같은 풍경을 그렸다. 1936년경부터 이미 데페이스망보다도 고립된 물체 자체의 불가사의한 힘을 끄집어 내는 듯한, 독특한 세계를 조밀(組密)하게 그리기 시작했고, 또한 말과 이미지를 애매한 관계에 둠으로서 양자의 괴리(乖離)를 드러내 보이는 방향도 보여주었다. 전후의 팝 아트에 끼친 영향은 적지 않다. 대표작은 『이미지의 속임』(1928~1929, 로스 앤젤레스 카운티 뮤지엄), 『의외의 대답』(1933, 브뤼셀, 왕립미술관), 『복제불가』(1937, 로테르담 보이만스 반 뷰닝겐 미술관), 『사람의 아들』(1964, 개인소장) 등이 있다

    • Intraversion 내향성(에너지방향/주의초점) : 깊이있는 대인관계 유지 조용함 신중 이해한 다음에 경험
    • Intuition 직관형(인식가능/정보수집) : 육감내지 영감에 의존,미래 지향적,가능성과 의미추구,신속,비약적으로 일처리
    • Thinking 사고형(판단기능/판단,결정) : 진실과 사실에 주관심 논리적 분석적 객관적 판단
    • Perceiving 인식형(이행양식/생활양식) : 목적과 방향은 변화가능 상황에 따라 일정 변경 자율적이고 융통성 있음

    γ 공감각형 예술가- 감각과 감각의 크로싱

    창의성의 원천, 다중 감각
    눈으로 듣고 귀로 보다
    색, 소리가 되다
    듣는 미술
    눈으로 만지고 손으로 보라
    손끝으로 보는 그림
    물감을 뜨개질하다
    눈으로 맛보고 입으로 감상하라
    눈으로 시식하다
    미각과 시각의 융합

    베른 근처 뮌헨부흐제 출생. 현대 추상회화의 시조이다. 어려서부터 회화와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바이올린 솜씨는 전문가 수준이었다. 21세 때 회화를 선택한 후에도 W.R.바그너와 R.슈트라우스, W.A.모차르트의 곡들에 심취, 그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1898~1901년 독일의 뮌헨에서 그림공부를 하고 세기 말의 화가 F.슈투크에게 사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초기 제작은 모두 어두운 환상적인 판화가 많으며 W.블레이크, A.V.버즐리, L.F.고야 등의 영향이 짙다. 1911년 칸딘스키, F.마르크, A.마케와 사귀고, 이듬해 1912년의 ‘청기사’ 제2회전에 참가하였으나 1914년 튀니스여행을 계기로 색채에 눈을 떠 새로운 창조세계로 들어갔다. 1921년 바이마르의 바우하우스 교수, 후에 뒤셀도르프 미술학 교수가 되어 1933년까지 독일에 머물렀다. 당시 독일에서는 나치스에 의한 예술탄압이 한창 진행되던 시기로, 102점에 이르는 작품을 몰수당하자, “독일은 이르는 곳마다 시체냄새가 난다”라 말하고 스위스로 돌아갔다.
    저술에는 바우하우스에서 강의한 내용을 모은 《조형사고(造形思考) Das bildnerische Denken》(1956) 《일기 Tagebucher》(1957)가 있다. 작품수장집은 스위스의 베른미술관 내 클레재단에 약 3,000점이 소장되어 있고, 대표작은 《새의 섬》 《항구》 《정원 속의 인물》 《죽음과 불》 등이다.

    • Intraversion 내향성(에너지방향/주의초점) : 깊이있는 대인관계 유지 조용함 신중 이해한 다음에 경험
    • Sensing 감각형(인식가능/정보수집) : 오감에 의존 실제 경험 중시 현재에 초점을 맞추고 정확,철저히 일처리
    • Thinking 사고형(판단기능/판단,결정) : 진실과 사실에 주관심 논리적 분석적 객관적 판단
    • Perceiving 인식형(이행양식/생활양식) : 목적과 방향은 변화가능 상황에 따라 일정 변경 자율적이고 융통성 있음

    δ 연구자형 예술가- 시간과 몰입의 크로싱

    공부하는 예술가
    나사못처럼 파고들다
    오로지 작업만, 작업만
    계속해서 일하시오
    색은 과학이다
    즐거운 워커홀릭
    구도자형 예술가
    모든 것의 근원
    종교이며 철학인 그림| 현대의 아이콘
    대담한 색채 사용, 원근법의 혁신적인 사용
    기하학적인 형태와 명암의 교차에 몰입함
    독특한 구성

    파리 살롱전에서 그의 작품들이 거절당했을 때, 드가는 다시 한 번 우울증에 빠졌지만 이번에는 견뎌냈다. 살롱전에서 작품을 거절당한 미술가들을 위한 대안으로, 1863년에 '낙선전'이 열렸다. 세잔은 이 전시회에서 다른 '불합격자들'인 에두아르 마네, 카미유 피사로, 앙리 팡탱 라투르등과 특히 피사로에게서 인상주의 기법 및 이론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함께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야외에서 그림을 그렸다. 세잔은 자신을 진정한 인상주의 화가로 생각하진 않았지만, 1874년에 인상주의 화가들과 함께 전시회를 가졌다. 그는 자신의 미술이 더 '단단하고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원했다. 오랫동안 플랑드르 미술에 감명을 받았던 세잔은 플랑드르의 대가들이 사용한 것과 유사한 색조로 정물화를 그렸다. 세잔의 정물화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사과와 오렌지>(1895~1900경)이다. 이 그림은 무미건조한 주제를 위대한 미술로 끌어올렸다.함께 작품을 전시했다. 20년 후인 1882년에, 그의 작품은 처음으로 살롱전에 통과되었다.

    • ntraversion 내향성(에너지방향/주의초점) : 깊이있는 대인관계 유지 조용함 신중 이해한 다음에 경험
    • Intuition 직관형(인식가능/정보수집) : 육감내지 영감에 의존,미래 지향적,가능성과 의미추구,신속,비약적으로 일처리
    • Feeling 감정형(판단기능/판단,결정) : 사람과 관계에 주관심 상황적 정상을 참작한 설명
    • Perceiving 인식형(이행양식/생활양식) : 목적과 방향은 변화가능 상황에 따라 일정 변경 자율적이고 융통성 있다

    ε 멀티플레이형 예술가 - 재능과 지식의 크로싱

    차이에서 공통점을 발견하다
    통합적으로 연결하고 사고하기
    방사형 나뭇가지 사고법
    기술과 이론을 융합하라
    장인이면서 이론가
    아름다움의 비밀을 풀다
    장인, 예술가가 되다
    천재는 만들어진다
    성공 전략의 핵심 가치는 도전과 혁신
    스토리텔링하라
    그림과 글은 하나다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천재적 미술가·과학자·기술자·사상가. 15세기 르네상스미술은 그에 의해 완벽한
    완성에 이르렀다고 평가받는다. 조각·건축·토목·수학·과학·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면에 재능을 보였다. 인체의
    해부학을 비롯하여 자연현상의 예리한 관찰과 정확한 묘사를 습득하여, 당시 사실주의의 교양과 기교를 갖추게 되었다.
    그의 특색인 깊은 정신적 내용의 객관적 표현은, 그의 놀라운 사실적 표현기교의 구사에 의해서만 가능하였다. 사실상
    15세기 르네상스 화가들의 사실기법을 집대성하여, 명암에 의한 입체감과 공간의 표현에 성공하였다. 점차 15세기적
    인 요소를 극복하고, 이 주관과 객관의 조화의 고전적 예술의 단계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는 만년에 이르러 과학적 관심을 갖고, 수많은 소묘를 남겼다. 인체해부를 묘사한 그림들은 인체묘사와 의학발전에도
    영향을 끼쳤다. 과학적 연구는 수학·물리·천문·식물·해부·지리·토목·기계 등 다방면에 이르며, 이들에 관한 수기(手記)나
    인생론·회화론·과학론 등이 많이 남아 있다.
    오늘날 우리가 자연과학으로 분류하는 해부학·기체역학·동물학 등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의 연구결과는 19세기
    말에 들어서 주목을 받으면서, 다시 그의 과학적인 천재성으로서 조명되고 있다. 현재 그의 기록이 23권의 책으로 남아
    있다.
    르네상스의 가장 훌륭한 업적, 즉 원근법과 자연에의 과학적인 접근, 인간신체의 해부학적 구조, 이에 따른 수학적 비율
    등이 그에 의해 완벽한 완성에 이르게 되었다. 그의 명성은 몇 점의 뛰어난 작품들에서 비롯하는데, 〈최후의 만찬〉 ·
    〈모나리자〉 · 〈동굴의 성모〉
    · 〈동방박사의 예배〉 등이 그러하다. 그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예술가일 뿐만
    아니라, 지구상에 생존했던 가장 경이로운 천재 중 하나다.

    • Extraversion 외향형(에너지방향/주의초점) : 폭넓은 대인관계 유지 사교적 정열적 활동적
    • Sensing 감각형(인식가능/정보수집) : 오감에 의존 실제 경험 중시 현재에 초점을 맞추고 정확,철저히 일처리
    • Feeling 감정형(판단기능/판단,결정) : 사람과 관계에 주관심 상황적 정상을 참작한 설명
    • Perceiving 인식형(이행양식/생활양식) : 목적과 방향은 변화가능 상황에 따라 일정 변경 자율적이고 융통성 있음

    ζ 하이브리드형 예술가- 내 것과 네 것의 크로싱

    문화 섞기
    다름에서 배우라
    내가 너에게, 네가 나에게 닿는 순간
    공간 섞기
    시간 섞기
    오래된 새로움
    생각의 이종 교배
    잡종 몬스터
    생각의 트랜스포머

    미국의 조각가로 움직이는 미술인 '키네틱 아트(Kinetic Art)'의 선구자이다. "몬드리안의 작품을 움직이게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움직이는 조각(mobile)'을 제작함으로써 조각을 대좌(臺座)와 양감에서 해방시켰다.
    1923년 뉴욕의 미술학교 아트스튜던츠 리그에서 회화를 공부하였으며, 1926~1936년에는 주로 파리에 머물면서 P.몬드리안, J.미로, J.아르프, M.뒤샹과 사귀면서 그들의 영향을 받았다.특히 1927년에 스튜디오에서 철사 ·나무조각 ·종이 ·가죽 등 여러 재료로 만든 서커스 단원과 동물들로 매주 4일 서커스 공연을 연출하였는데,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은 마루바닥에 앉아 장난감 동물들과 곡예사들의 묘기에 폭소를 터뜨리며 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그 가운데에는 레제 ·르 코르뷔지에 ·몬드리안 등이 있었다. 특히 몬드리안에 압도된 그는 “몬드리안의 작품을 움직이게 하고 싶다”고 생각하였고, 그 구체적 표현이 ‘움직이는 조각(mobile)’이었다. 그의 모빌은 조각을 대좌(臺座)에서 해방시켰고, 양감에서도 해방시켰다. 1935년 이후의 모빌은 모터보다는 기류(氣流)에 의해 움직이는 쪽으로 이동하였다. 그것은 가는 철사에 연결된 철판으로 된 형태들이 기류를 따라 또는 상호 균형의 원리를 따라 계속해서 움직이는 조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이 낳은 훌륭한 조각가의 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고, 1952년에는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전람회에서 조각대상을 받았다. 1960년대 이후 대형조각 붐이 일어나면서 그의 작품들은 비행장 ·미술관 ·광장 등에 세워졌다.
    그의 업적은 움직이는 미술인 ‘키네틱 아트(Kinetic Art)’의 선구자였다는 데 있으며, 그 이후 J.탱글리, J.리키 등의 조각가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 Intraversion 내향성(에너지방향/주의초점) : 깊이있는 대인관계 유지 조용함 신중 이해한 다음에 경험
    • Sensing 감각형(인식가능/정보수집) : 오감에 의존 실제 경험 중시 현재에 초점을 맞추고 정확,철저히 일처리
    • Thinking 사고형(판단기능/판단,결정) : 진실과 사실에 주관심 논리적 분석적 객관적 판단
    • Judging 판단형(이행양식/생활양식) : 분명한 목적과 방향, 기한 엄수,철저한 사전계획,체계적

    η 협업형 예술가- 너와 나의 크로싱

    네덜란드의 판화가. 기하학적 원리와 수학적 개념을 토대로 2차원의 평면 위에 3차원 공간을 표현했다. 평면의 규칙적 분할에 의한 무한한 공간의 확장과 순환, 그리고 대립이 작품의 중심을 이루며, 모호한 시각적 환영 속에 사실과 상징, 시각과 개념 사이의 관계를 다뤘다.
    에셔는 1936년 지중해 연안을 따라 여행했으며, 스페인 그라나다에 있는 알람브라 궁전을 두 번째 방문했다. 그곳에서 그는 계속해서 반복되는 형상들이 평면을 규칙적으로 분할하는 무어인의 장식 미술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그는 더 이상 풍경화 작업을 하지 않고 기하학적 원리에 따른 자신의 내면의 환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무어인의 추상적 형상이 아닌 새나 물고기, 동물 등 알아보기 쉬운 형상들로 평면을 대칭 배열해 전체 패턴을 구성하는 작업이었다. 1941년 네덜란드의 바른에 정주한 그는 ‘수학적 화상’이라고 하는 그만의 독특한 세계인 공간과 평면의 마술적 구조를 목판화와 석판화로 제작했다. 1944년 무렵부터 초현실주의적 색채를 띤 그의 작품은 3차원적 구성을 2차원의 평면으로 표현해 사실과 상징, 시각적 환영, 시각과 개념의 관계 등을 다뤘다. 그는 공간착시와 불가능한 장면의 사실적 묘사, 정다면체를 소재로 한 작품을 만들었으며, 이러한 판화작품에서는 수학적 개념이 핵심적 역할을 했다. 에셔 작품의 두드러진 특징은 다른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작품이 대부분 그림 속의 상황이 현실과 무관한 설정이라는 것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묘사된 데 반해, 그의 작품은 순간적으로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착각을 불러일으키도록 연출되었다. 그것은 환상적인 초현실을 다루지만 이성을 부정하거나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성적인 구조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에셔의 작품에서 끊임없이 다뤄지고 있는 것은 반복과 순환이라는 고리이다. 에셔는 반복되는 기하학적 패턴을 이용하여 대칭의 미를 느낄 수 있는 ‘쪽매맞춤’이라 불리는 테셀레이션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테셀레이션(Tessellation)이란 규칙적인 공간분할을 의미하는 것으로 동일한 모양을 이용해 평면이나 공간을 빈틈이나 겹쳐지는 부분 없이 채우는 것을 말한다. 그는 다양한 형태에 의한 공간분할에 큰 관심을 기울였고 반사, 미끄럼 반사, 평행이동, 회전의 기법을 이용하여 규칙적 공간분할에 사용될 수 있는 변형 패턴들을 탐색했다. 에셔의 작품 《하늘과 바다》(1938), 《대칭 45》(1941), 《도마뱀》(1943), 《높고 낮음》(1947), 《폭포》(1961) 등과 같은 작품을 보면 서로 대립되는 개념들을 테셀레이션 기법을 이용하여 한 화면에 담고 있다. 즉, 망망한 바다를 유영하는 물고기는 어느 순간 하늘을 나는 새로 변화되어 있고, 하얀 날개에 두 손을 모은 천사들 속에 검은 악마들이 존재한다. 스케치북에 그려진 도마뱀은 스케치북을 빠져나와 살아있는 생물로 활동하다 다시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 수평의 벽은 수직의 천장이나 바닥이 되어 있으며, 위에서 떨어지는 물줄기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처음에 물이 떨어지는 곳에 도달한다. 이렇게 평면과 3차원이 서로 부딪치는 이율배반적인 공간으로 자주 형상화되는 가상과 현실의 기묘한 세계는 확실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실에 대해 한 번쯤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에셔의 작품은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평면적인 패턴과 명확한 3차원적 질감 사이의 모호한 시각적 환영을 통해 현실은 긍정되는 동시에 부정되며, 객관화되는 동시에 상대화되고 있음을 확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때문에 그의 세계는 차가운 분위기와 팽팽하게 긴장된 생소함을 느끼게 해준다. 에셔의 작품은 1950년대까지는 예술적 정감이 그리 엿보이지 않는, 지극히 정적인 차가움만 감도는 수학적 세계와 같다는 시큰둥한 평가 일색이었다. 하지만 1950년대 중반부터 그의 유희적인 작품 의도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그는 1968년 헤이그시립미술관 회고전을 통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주요 작품에 《반사구를 들고 있는 손 Hand with Reflecting Sphere》(1935), 《낮과 밤 Day and Night》(1938), 《도마뱀 Reptiles》(1943), 《손을 그리는 손 Drawing Hands》(1948), 《상대성 Relativity》(1953), 《올라가기와 내려가기 Ascending and Descending》(1960), 《폭포 Waterfall》(1961), 《뫼비우스의 띠 II Mobius Strip II》(1963), 《뱀 Snakes》(1969) 등이 있다.

    • Extraversion 외향형(에너지방향/주의초점) : 폭넓은 대인관계 유지 사교적 정열적 활동적
    • Intuition 직관형(인식가능/정보수집) : 육감내지 영감에 의존,미래 지향적,가능성과 의미추구,신속,비약적으로 일처리
    • Feeling 감정형(판단기능/판단,결정) : 사람과 관계에 주관심 상황적 정상을 참작한 설명
    • Perceiving 인식형(이행양식/생활양식) : 목적과 방향은 변화가능 상황에 따라 일정 변경 자율적이고 융통성 있음

    θ 체험형 예술가- 경험과 열정의 크로싱

    체험은 혁신의 자양분
    임상학적 체험을 그리다
    융합은 남과 다른 경험에서
    예술이 된 관찰
    답은 현장에 있다
    기상학과 풍경화의 융합
    발로 뛰어라
    광학적 체험
    오디세이가 되어라

    신인상주의미술을 대표하는 프랑스의 화가. 색채학과 광학이론을 연구하여 그것을 창작에 적용해 점묘화법을 발전시켜 순수색의 분할과 그것의 색채대비로 신인상주의의 확립을 보여준 작품을 그렸다. 인상파의 색채원리를 과학적으로 체계화하고 인상파가 무시한 화면의 조형질서를 다시 구축한 점에서 매우 의의가 있으며, P.세잔과 더불어 20세기 회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파리 출생. 1878년 파리의 관립미술학교에 입학하여 앵그르의 제자 H.레만의 지도를 받다가, 다음해 지원병으로 입대하여 브레스트의 해안에서 병역을 마쳤다. 파리로 돌아와서는 고전 작품을 연구하고 소묘에 힘을 쏟는 한편, 셔브뢸, 헬름홀츠등의 색채학과 광학이론을 연구하여, 1881년경 들라크루아의 작품의 색채대비와 보색관계를 해명한 글을 발표하여 세인의 관심을 모았다. 이러한 이론을 창작에 적용하여 점묘(點描)화법에 의한 최초의 대작 《아스니에르에서의 물놀이 Une Baignade, Asnieres》(1883∼1884)를 완성하였는데, 이 작품은 1884년 살롱에 출품하여 낙선하였으나 앙데팡당전(展)에 출품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일을 인연으로 평생 화우(畵友) P.시냐크와 사귀게 되었다.
    1885년 《그랑드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를 제작하여 다음해에 열린 인상파 최후의 전람회에 발표하였다. 이것은 전작(前作)의 수법을 한층 더 발전시켜 순수색의 분할과 그것의 색채대비에 의하여 신인상주의의 확립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이 밖에 《포즈를 취한 여인들 Les Poseuses》(1888) 《기묘한 춤 Le Chahut》(1889∼1890) 《화장하는 여인》(1890) 등의 작품이 있다. 모두 인상파의 색채원리를 과학적으로 체계화하고 인상파가 무시한 화면의 조형질서를 다시 구축한 점에서 매우 의의가 있으며, P.세잔과 더불어 20세기 회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전염성 후두염으로 32세의 젊은 나이에 파리에서 요절하였다.

    • Intraversion 내향성(에너지방향/주의초점) : 깊이있는 대인관계 유지 조용함 신중 이해한 다음에 경험
    • Sensing 감각형(인식가능/정보수집) : 오감에 의존 실제 경험 중시 현재에 초점을 맞추고 정확,철저히 일처리
    • Feeling 감정형(판단기능/판단,결정) : 사람과 관계에 주관심 상황적 정상을 참작한 설명
    • Perceiving 인식형(이행양식/생활양식) : 목적과 방향은 변화가능 상황에 따라 일정 변경 자율적이고 융통성 있음

    λ 성인군자형 예술가

    1928년 오스트리아빈에서 태어났다. 1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유대인인 어머니와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제 2차 세계대전 중에는 히틀러의 유대인 탄압으로 외가 친척 69명이 몰살당했으며, 그와 그의 어머니는 유대인 거주지구(게토)로 강제 이주되었다. 이때의 경험은 그의 전 생애에 깊은 트라우마로 남아 평화에 대한 강한 의지와 신념을 갖도록 했다. 그 스스로 개명한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라는 이름은 “평화롭고 풍요로운 곳에 흐르는 백 개의 강”이라는 뜻으로 그의 삶과 예술에 흐르는 정신을 일깨워준다. 일찍이 색채와 형태에 대한 남다른 감각을 지녀 미술에 두각을 나타냈다. 전쟁 후 빈 미술아카데미에서 3개월 동안 공부했으며, 이후에는 유럽 전 지역을 여행하면서 견문을 넓히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만들어 나갔다. 그는 작업실을 따로 두지 않고 집과 야외, 레스토랑, 기차나 비행기 등 자신이 머무르는 곳은 어디에서든 그림을 그렸다. 또한 이젤을 사용하는 대신 캔버스나 종이를 펼쳐놓고 작업했다. 하나의 작품에 수채 물감, 유화 물감, 유성 펜, 아크릴, 템페라, 오일, 금속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했으며, 종이와 캔버스는 물론 프린트지, 포장지, 나무판, 천 조각, 버려진 종이 등 다양한 곳에 그림을 그렸다. 물감의 대부분도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 그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은 ‘나선’의 형태이다. 그에게 나선은 생명과 죽음을 상징한다. 그리고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지 않고 끝없이 돌고 있는 나선이야말로 우리의 삶과 가장 많이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색채의 마술사’라고 불릴 정도로 색을 조합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그는 전통적인 색의 조합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롭고 대담한 컬러를 사용했다. 그의 특유의 색감은 회화에서 주제를 드러내는 데 주조적인 역할을 했으며, 생명의 다양함과 무한함을 색채를 통해 표현했다. 1983년 훈데르트바서는 빈의 시의회가 의뢰한 공공주택 리모델링 작업에 착수했다. ‘건축은 네모다’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탄생한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에는 건축을 통해 지상낙원을 실현하려는 그의 꿈이 녹아 있다. 그는 ‘자연에는 직선이 없으며, 인간은 이 땅의 모든 생명체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살아가야 한다’는 신념을 건축 안에 쏟아 부었다. 빈의 가장 유명한 건축물 가운데 하나인 《쿤스트하우스 빈》 역시 그의 이러한 철학이 그대로 투영되었다.
    그는 도시의 메마른 건축들에 생명을 불어넣어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공간으로 탈바꿈시켜 ‘건축 치료사’라는 이름을 얻었다. 자연보호, 산림운동, 반핵운동 등 예술 밖에서도 활발한 운동을 실천한 환경 운동가이기도 했다. 그는 생태주의 복음을 설파하며 캠페인 포스터를 제작하고 시위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철학을 피력했다. 일생을 환경보호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헌신한 그는 2000년 태평양을 항해하던 엘리자베스 2호 갑판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의 나이 71세였다. 그는 유언에 따라 뉴질랜드에 있는 그의 땅 ‘행복한 죽음의 정원’ 안에 있는 튤립나무 아래 자연과 어우러져 영원히 잠들었다. 주요 작품에는 《대성당 1 Cathedral 1》(1951), 《노란 집들-질투 Yellow Houses-Jealousy》(1966), 《작은 길 The Small Way》(1991) 등의 회화 작품과 《쿤데르트바서 하우스 Hundertwasserhaus》(1983~1986, 오스트리아빈), 《쿤스트하우스 빈KunstHausWien, 오스트리아빈》(1991), 《블루마우 온천마을 Blumau》(1993~1997, 오스트리아 슈타이어마르크 주) 등의 건축물이 있다.

    • Extraversion 외향형(에너지방향/주의초점) : 폭넓은 대인관계 유지 사교적 정열적 활동적
    • Intuition 직관형(인식가능/정보수집) : 육감내지 영감에 의존,미래 지향적,가능성과 의미추구,신속,비약적으로 일처리
    • Thinking 사고형(판단기능/판단,결정) : 진실과 사실에 주관심 논리적 분석적 객관적 판단
    • Judging 판단형(이행양식/생활양식) : 분명한 목적과 방향, 기한 엄수,철저한 사전계획,체계적

    μ 지도자형 예술가

    미국 건축가. 초기에는 주로 공장과 사무소를 설계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바우하우스 교장으로 후진을 양성하다가 이후 베를린과 카를스루 주택단지 건설에 참여했다. 도미하여서는 하버드대학 등에서 교수를 지냈다.
    제1기는 근대적인 구조로서의 건축의 새로운 표현 가능성을 추구한 시기, 즉 1907년 P.베렌스의 사무소에 들어가 10년 동안 근무한 후 독립하면서 파구스구두공장(1911)·독일공작연맹(DWB)박람회의 공장 및 사무소(1914)를 설계하였다. 특히 유리로 만든 커튼 월의 대담한 사용법이 주목을 끌었다.
    제2기는 제1차 세계대전 후인 1919~1928년에 이르는 바우하우스의 교장시절이었다. 유능한 디자이너를 많이 육성할 목적으로 바이마르에서 출발하여 1925년 데소로 이전(바우하우스 신교사는 그의 대표작이기도 하다)하였으며, 근대 디자인운동 메이커로서의 디자인 교육의 기초자세를 세계에 과시하였다.
    제3기는 바우하우스의 교장을 사임하고, 1928∼1934년까지 도시문제, 특히 집단주거 건축의 실제적인 해결을 모색하였다. 판자 모양의 고층아파트의 제안이나, 베를린 및 카를스루에에서의 주택단지 건설에 참가하였다.
    제4기는 나치스의 대두로 독일을 떠나 영국과 미국에서 활동한 시절인데, 영국에서는 M.플라이와 협동하여 몇 개의 건축을 이룩하고, 1937년에 도미하여 하버드대학 건축과의 대학원 교수로 많은 건축가를 육성하였다.
    그의 생애는 바로 계몽가로서의 기본노선을 따라 전개되었으며, 미정리 부분을 재빨리 찾아내어 정확한 해결을 제시하고 실제로 창조해보이는 능력이 뛰어났다. 팬아메리칸월드항공사 빌딩은 그의 대표작이다.

    • Intraversion 내향성(에너지방향/주의초점) : 깊이있는 대인관계 유지 조용함 신중 이해한 다음에 경험
    • Intuition 직관형(인식가능/정보수집) : 육감내지 영감에 의존,미래 지향적,가능성과 의미추구,신속,비약적으로 일처리
    • Feeling 감정형(판단기능/판단,결정) : 사람과 관계에 주관심 상황적 정상을 참작한 설명
    • Perceiving 인식형(이행양식/생활양식) : 목적과 방향은 변화가능 상황에 따라 일정 변경 자율적이고 융통성 있음

    ξ 이상주의자형 예술가

    프랑스의 화가이자 조각가. 아마추어 화가나 어린아이, 정신병자 같은 사회적 약자들의 작품에 매료되어 이러한 미술을 ‘아르 브뤼 Art Brut'라고 칭하고, 가공되지 않은 원시적이고 본원적인 미술에 역점을 두었다. 그의 예술은 앵포르멜 미술운동의 이념적 토대가 되었으며 비주류미술인 ‘아웃사이더 아트’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장 뒤뷔페(Jean Philippe Arthur Dubuffet)는 1901년 프랑스의 르 아브르에서 태어났다. 1918년 파리로 와서 아카데미 쥘리앙에 들어가 6개월을 수학한 후 학교를 그만두고 독학으로 미술 공부를 했다. 그는 몽마르트르 언덕의 카페를 드나들며 수잔 발라동(Suzanne Valadon), 막스 자코브(Max Jacob) 등과 가깝게 지냈고, 라울 뒤피(Raoul Dufy)의 스튜디오를 방문하기도 했다. 또한 문학과 언어, 음악에 관심을 기울이며 ‘일요 모임’을 통해 예술계의 저명인사들과 교류했다. 특히 앙드레 마송(Andre Masson), 페르낭 레제(Fernand Leger)의 회화에서 많은 자극을 받았다. 뒤뷔페는 1924년 정신병 환자들이 그린 그림에 대해 설명한 한츠 프린츠호른(Hanz Prinzhorn)의 저서 『정신병자들의 그림』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예술가의 창작 활동과 예술의 가치에 대한 회의(懷疑)로 작품의 대부분을 폐기하고 작품 활동을 중단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와인사업을 이어받기 위해 경영 수업을 받았다. 1933년 그림을 다시 시작했지만 몇 년 후 파산 위기의 사업체를 회복시키기 위해 또다시 미술을 포기했다. 1942년 사업체를 법정대리인에게 위임하고 이후 미술에 전념했다. 1944년 파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어 많은 논란을 야기시켰다. 그는 타르, 자갈, 석고, 시멘트 등 이색적인 재료를 실험했으며, 아마추어 화가들의 작품이나 어린아이, 정신병자 같은 사회적 약자들의 작품에 매료되었다. 1945년 이러한 미술작품들을 거칠고 조야한 미술이라는 의미로 ‘아르 브뤼 Art Brut’라고 칭하고, 이 작품들을 자신만이 방법으로 새롭게 탄생시켰다. 그는 1948년에 아르 브뤼 컴퍼니를 창설하고, 아르 브뤼 컬렉션을 구성했다. 이 컬렉션은 공식 예술계에서 지향하는 길과는 다른 새로운 길을 모색해 온 그에게 끝없는 자극과 에너지의 근원이 되었다. 현대 문명의 획일성과 사회적 규범에 저항하면서 예술적인 문화에 오염되지 않은 사람들이 창조한 날 것 그대로의 다듬지 않은 미술이야말로 훨씬 더 진실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고상하고 세련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그림과 드로잉은 유치하고 편집적이며, 미완성된 것처럼 보여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뒤뷔페는 자신의 예술을 통해 사회적 체면과 예의 뒤에 숨겨져 있는 원시적이고 근본적인 사실성을 폭로하고자 하는 것이 미술가로서 필생의 야심이었다. 어린아이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표현적이고 단순화된 형태와 그래피티에서 볼 수 있는 직접적이고 활력 있는 낙서 자국을 특징적으로 사용했다. 물감을 겹겹이 바름으로써 거친 질감을 만들었으며, 흘러내린 물감 자국과 얼룩을 그대로 드러냈다. 1960년에는 코브라(CoBrA) 그룹의 아스거 요른(Asger Jorn)과 함께 음반 제작을 하는 한편 독자적으로 음악적 실험을 하기도 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는 비닐 물감으로 채색된 발포 폴리스티렌을 이용한 대규모 조각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또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에는 선으로 이루어진 여러 작품들을 이어 붙여 거대한 콜라주를 제작했다. “추하다고 여겨지는 것들도, 사람들이 흔히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들만큼이나 아름답다.”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진정한 예술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기존 원칙과 기법을 거부했던 그의 예술 경향은 주류 문화와 예술품의 생산 그 자체를 거부하는 급진적이고 전복적인 도전으로 보였다. 그가 표방한 반교양적, 반지성적 예술 개념은 미셜 타피에(Michel Tapie)의 앵포르멜 이념의 설립뿐만 아니라 비주류미술인 아웃사이더 아트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뒤뷔페는 1985년 파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주요 작품에는 《경호원 Gardes du corps》(1943), 《행복한 시골 풍경 Campagne heureuse》(1944), 《여인의 육체 Corps de dame》(1950), 《재질학 IX Texturologie IX》(1957), 《금반지 La bague d'or》(1958), 《우를루프 정원 Jardin l'Hourloupe》(1966), 《좌표 Les coordonnees》(1978), 《길 La rue》(1980), 《서있는 동물의 기념비 Monument With Standing Beast》(1984) 등이 있다.

    • Intraversion 내향성(에너지방향/주의초점) : 깊이있는 대인관계 유지 조용함 신중 이해한 다음에 경험
    • Intuition 직관형(인식가능/정보수집) : 육감내지 영감에 의존,미래 지향적,가능성과 의미추구,신속,비약적으로 일처리
    • Feeling 감정형(판단기능/판단,결정) : 사람과 관계에 주관심 상황적 정상을 참작한 설명
    • Judging 판단형(이행양식/생활양식) : 분명한 목적과 방향, 기한 엄수,철저한 사전계획,체계적

    π 예언자형 예술가

    앙리 루소는 한때 자신을 프랑스 최고의 사실주의 화가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당시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종종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루소라는 이름 대신, 세관 사무원이었던 그의 직업을 내세워 '르 두아니에'라고 불렀다. 그러나 말년에 들어서 루소에 대한 대중들의 평가는 점차 호의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런 평가는 그의 사후에 더욱 강해져서 오늘날 그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2005년부터 2006년에 걸쳐 루소의 회고전이 파리와 런던, 워싱턴에서 차례대로 열렸다. 1860년에 학교를 그만둔 루소는 1868년까지 파리에 거주하며 시의 하급 공무원으로 일했다. 그는 40대 초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진지하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자연보다 나은' 스승이나 교육은 없다고 단언했다. 루소의 가장 뛰어난 작품들 가운데 일부는 정글의 야생 동물과 울창한 수풀로 가득 찬 이국적인 자연을 재현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장면은 모두 그의 실제 경험이 아닌 상상으로 그린 것이었다. 왜냐하면 루소는 태어나 단 한 번도 프랑스를 떠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이러한 주제들을 묘사하기 위해 파리의 자연사 박물관과 식물원, 동물원을 수없이 자주 찾았을 뿐만 아니라 세심하게 고른 인쇄물과 사진집 등을 참고했다. 1895년까지 루소는 십년 동안 앵데팡당전에 해마다 최소한 한 작품씩 출품을 했는데, 그의 작품들은 어느 정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는 했지만 거의 팔리지는 않았다. 1907년에 루소는 화상인 빌헬름 우데와 화가인 로베르 들로네를 알게 되었다. 들로네의 어머니는 루소에게 <땅꾼>(1907)을 그려줄 것을 의뢰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많은 미술가들이 루소를 친구로 받아들이고 그의 영향력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젊은 미술가들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들로 파블로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 콘스탄틴 브랑쿠시 등을 꼽을 수 있다. 3년 후 루소는 <꿈>(1910)을 앵데팡당전에 출품하여 비평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이로써 그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성공을 살아생전에 맛볼 수 있었다.